
모든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습니다
매년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과 현충일에 이스라엘 전역에서 열리는 추모식에서는 늘 같은 시가 낭독됩니다. 그 시의 구절은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과 / 부모님이 주신 이름이 있다.”
시는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모든 이름들—적들이 붙인 이름, 사랑하는 이들이 붙인 이름, 죄가 붙인 이름, 그리움이 붙인 이름—을 차례로 나열하며 이어집니다. 우리가 600만 명의 희생자나 이 땅을 지키다 전사한 군인들을 추모할 때, 그들이 이름이 아닌 숫자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니 토라의 '바미드바르' 장이 인구 조사로 시작된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שְׂאוּ אֶת־רֹאשׁ כָּל־עֲדַת בְּנֵי־יִשְׂרָאֵל לְמִשְׁפְּחֹתָם לְבֵית אֲבֹתָם בְּמִסְפַּר שֵׁמוֹת כָּל־זָכָר לְגֻלְגְּלֹתָם׃
“이스라엘 온 회중을 조상의 가문별로 조사하여, 모든 남자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기록하라.”
(민수기 1:2)
하나님은 모쉐에게 이스라엘 백성, 즉 군사 복무 연령의 모든 남성을 지파별로 계수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토라는 각 지파의 최종 집계 수치를 거의 관료적인 정밀함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르우벤 지파 46,500명, 시므온 지파 59,300명 등, 총 603,550명에 이르기까지 이어집니다. 창조의 시적 묘사와 시나이 산의 천둥소리에 대해 다른 곳에서는 길게 서술하는 이 책으로서는, 이는 이상하고도 냉철한 서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인구 조사를 원하신 것일까요?
에프라임 미르비스 랍비는 나흐마니데스와 솔로베이치크 랍비의 주석을 인용하며 인상적인 해답을 제시합니다. 나흐마니데스는 두 가지 해답을 제시하는데, 이 두 해답은 거의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나흐마니데스는 첫 번째 주석에서 인구 조사가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유대 백성은 수년간의 잔혹한 노예 생활을 견뎌냈고, 그 뒤를 이어 광야 여정의 고난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수는 여전히 많았습니다. 이 인구 조사는 하나님의 보호를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해석에서 중요한 것은 총수, 즉 하나님의 신실함을 증언하는 그 거대한 숫자였습니다.
그러나 나흐마니데스는 두 번째 주석도 제시하는데, 여기서 초점은 완전히 바뀝니다. 토라는 인구 조사가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나흐마니데스는 이것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설명합니다. 각 지파의 구성원들은 줄을 서서 한 명씩 앞으로 나와 모쉐와 지파 지도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각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말했습ㄴ니다. 짧은 대화가 오갔습니다.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가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 사람은 계수에 포함되었습니다.
이 해석에서 중요한 것은 총계가 아니라, 지도자 앞에 서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개인이었습니다.
라비 요세프 B. 솔로베이치크는 나흐마니데스의 두 주석 모두 옳을 뿐만 아니라 필수적이며, 이 둘 사이의 긴장 관계가 우리가 공동체, 민족성, 그리고 인간 생명의 무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실체를 잘 포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는 예시를 들어 그 차이를 설명했습니다. 27파운드짜리 물건을 샀다고 가정해 봅시다. 다음 날 누군가 얼마를 냈는지 묻자, 당신은 즉시 27파운드라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지불했는지 — 20파운드 지폐, 5파운드 지폐, 동전으로? —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총액이었을 뿐, 그 구성 요소들은 그 안에 녹아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제 다른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당신이 27명의 학생을 이끌고 박물관을 방문하는 교사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하루 종일 당신은 인원을 세고 있습니다. 버스에 탈 때, 내릴 때, 전시실을 지날 때마다. 숫자 27 자체가 본질적인 의미를 지녀서가 아니라, 그 27명 중 한 명 한 명이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인원이 26명으로 집계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통계적 오차가 아니라 재앙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총합이 중요한 이유는 전적으로 그것을 구성하는 개개인들 때문입니다.
나흐마니데스의 두 주석에서 솔로베이치크 랍비는 두 가지 교훈을 이끌어 냈습니다. 총합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학교에 학생이 몇 명인지, 공동체에 회원이 몇 명인지, 세상에 유대인이 몇 명 남아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 숫자들은 차가운 추상적 개념이 아닙니다. 이 숫자들은 한 민족의 건전성과 미래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 줍니다.
하지만 숫자가 결코 개인을 삼켜 버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광야에서 계수된 모든 사람은 숫자가 되기 전에 하나의 이름이었습니다. 즉, 각자의 역사와 지파를 가진, 지도자에게 그 얼굴이 알려진 한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광야에서의 인구 조사는 단순한 관료적 절차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성한 인정의 행위였습니다. 집계가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각 이름이 불리고 각 사람이 주목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지도자들이 단순히 인구 수만이 아니라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는 나라가 되어야 했습니다.
때로는 총계가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람들을 세고 있을 때—우리 공동체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전사자들을 기억할 때—모든 숫자는 이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By Shira Schec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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